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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고 - 큰별 쌤 최태성의 별별 한국사 능력검정시험

 

- 조선 후기 (조직, 외교) -

 

 

1. 조선 후기 통치 체제 변화

 

 <임진왜란 이전>

  > 비변사 

   - 3포 왜란(중종) - 임시회의 기구

   - 을묘왜변(명종) -> 상설 기구화 됨

 

 > 중앙군 및 지방군

  - 5위 영진군

 

 < 임진왜란 이후>

  > 비변사 

   - 최고 기구화, 의정부와 6조 중심의 행정 체계 유명무실화

   - 세도 정치 시기에 세도 가문의 세력 기반

   - 흥선 대원군의 정치 개혁 과정에서 혁파됨

 

 > 중앙 군 및 지방군

   - 5군영 체제 성립 : 훈련도감(임진왜란 중에 설치 포수, 사수, 살수 삼수병 구성)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: 어영청, 총융성, 수어청, 금위영

   - 속오군 : 양반에서 노비까지 모두를 대상으로 편성

 

 > 방어체제 

  - 진관 체제(15세기) -> 제승방략 체제(16세기) -> 진관 복구, 속오군 체제(임진왜란 이후)

 

2. 청과의 관계

 > 북벌론

  - 효종 때 활발히 전개 -> 송시열, 이완 등을 등용하여 군대 양성하였으니 효종이 사망하면서 중단

  - 숙종 때 윤휴, 허적 등 남인을 중심으로 다시 북벌론 제기 -> 남인의 실각으로 시행되지 못함

 > 나선정벌

  - 효종 때 청과 러시아 사이에 국경 분쟁 발생 ->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조총 부대 파견

 > 북학론

  - 18세기 이후 실학자들 중심으로 대두, 청의 발달한 기술과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 부강하게 만들자는 주장

  - 유수원(우서), 홍대용(의산문답), 박지원(열하일기), 박제가(북학의)

 

3. 간도문제

 > 백두산 정계비(숙종)

  - 숙종 때(1712) 조선과 청의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여 국경을 확정 -> 서쪽으로는 압록강, 동쪽으로는 토문강

 > 간도 귀속 문제

  - 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, 간도 관리사 이범윤 임명(1903)

> 간도 협약(1909)

  - 일제가 만주의 철도 부설권과 탄광 채굴권을 얻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

  - 대한 제국은 을사늑약(1905)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뺴앗겨 협약 체결 과정에 참여 X

 

3. 일본과의 외교

 > 기유약조(1607)

  - 대마도주와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무역 재개 (광해군)

  - 막부의 요청으로 대규모 외교 사절 파견

  - 왜란 이후 19세기 초까지 12차례 파견

 

 > 독도문제

  - '세종실록지리지(편년체)', '동국여지승람(성종)' 등에 우리 영토 기록

  -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 받음(숙종)

  - 대한 제국 칙령 41호(1900) : 고종 황제는 칙령 반포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유권 확인

  - 러 일 전쟁 중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 불법 편입(1905)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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